조선시대를 관통했던 우리나라의 신유학(Neo-Confucianism)은 주자학(朱子學), 또는 정주학(程朱學)이라고 불린다. 전자는 뚜렷하게 남송의 성리학자였던 주희(朱熹, 1130∼1200)를 가리키고 있는 반면 후자는 주희와 함께 주자학의 선하를 이루었던 두 명의 북송 유학자,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1107)를 가리키고 있다. 흔히 ‘이정 형제’라고 불리는 이들인 남긴 말과 글은 이정전서(二程全書)라는 하나의 문집으로 편찬되었다. 이정전서는 크게 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 25권(부록附錄 1권 포함) 및 하남정씨외서(河南程氏外書)·명도선생문집(明道先生文集)·이천선생문집(伊川先生文集)·주역정씨전(周易程氏傳: 이천역전(伊川易傳)으로 불린다), 하남정씨경설(河南程氏經說)·하남정씨수언(河南程氏粹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학술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하남정씨유서와 하남정씨외서, 그리고 주역정씨전이다. 전자는 이정 형제의 육성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어록(語錄)으로서 쉽게 말해 저술이 아니라 이정 형제의 발언을 제자와 주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다. 후자는 주역철학사에서 의리역이라는 새로운 역학 해석 방법론을 제시한 고전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각별하다. 따라서 조선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자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이 두 책은 필독서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말로 옮겨지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옮긴이들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번역이 이뤄지게 되었다.
이 책은 전체 4권 1질로서 하남정씨유서와 부록 부분을 3권으로, 하남정씨외서 부분을 1권으로 역주 번역한 것이다. 번역본의 제목은 학계에서 보다 관용적으로 불리는 이정유서와 이정외서로 붙였다. 원고지로 따지면 8,500매를 상회하고 그 가운데 역주 부분이 대략 1/3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정 형제의 어록 부분을 완역한 것이다.
번역 과정에서 옮긴이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범주화된 풍부한 역주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고전 번역이 단순한 원문의 번역을 넘어, 풍부한 사상사적 배경과 보다 섬세한 이해를 위한 역주 작업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진전된 학계의 상식에 호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옮긴이들은 번역과 역주를 위해 세 가지 범주에 속하는 기본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기본 자료의 성격을 따라 세 가지 기본 원칙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역주 번역본의 독창성과 학술적 수준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들 각각은 ‘이주보정以朱補程’, ‘이불비정以佛批程’, ‘이한해정以韓解程’의 원칙으로 명명되었다.
이주보정은 주자학적 시각에서 이정 형제의 발언 취지를 보충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인용 자료는 주자어류 권95∼97부분, 여남(吕枏)의 이정자초석(二程子抄釋), 손기봉(孫奇逢)의 이학종전(理學宗傳) 등이다. 이불비정은 불교의 호교론적 시각에서 이정 형제의 불교 비판 발언을 재반박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인용 자료는 요광효(姚廣孝)의 도허자도여록(逃虛子道餘錄)인데, 옮긴이들이 아는 한 이 텍스트는 이정 형제와 관련해서 국내의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한해정은 주체적인 한국 학술사의 시각에서 이정 형제의 발언 취지를 풀이한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인용 자료는 송시열(宋時烈)의 정서분류(程書分類)를 비롯해서, 윤봉구(尹鳳九)의 「이정전서부첨(二程全書付籤)」, 이원배(李元培)의 「정서기의(程書記疑)」, 어유봉(魚有鳳)의 「이정전서의의(二程全書疑義)」 등이다.
한편, 이 책은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이하 ‘센터’)의 성리학총서 1∼4에 해당하기도 한다. 센터는 2001년에 창립되어 동·서양의 철학적 횡단 연구를 통한 선도적 담론 창출을 목표로 하는데, 이를 위해 특히 호남학으로서 호남유학과 전통 사상으로서 유학적 사유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호남유학 총서 시리즈의 발행은 다행스럽게 6권을 넘어서 이어지고 있는데, 성리학 분야의 연구 성과가 없다가, 비로소 이 네 권의 번역서로 성리학총서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센터는 앞으로도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정전서 전체와 주자학의 가장 핵심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주자대전의 완역본을 출판하는 것을 을 장·단기 목표로 설정해서 완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