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락도 없고, 만남도 없어서 많이 서운하다고, 다가오다가 그렇게 떠나가신 분들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부디 다양한 사람과 관계에 서툰 저를 미련 없이 스쳐 지나가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다가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던 분들이 많은데 제 오랜 삶의 관성이 그 마음을 가로막았던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저는 만남과는 상관없이 항상 관계들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잊어야 할 관계는 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는 영영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꼭 무언가가 됐어야만 기억에 남는 건 아니니까요. 마음이 있고, 인연이라면 언젠가 분명히 만나게 될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때까지 잘들 지내시길 바랍니다.
2)
사람들은 서로의 관계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그들 사이의 벽이 사라진다고 믿는다지만, 어쩐지 저는 그들 이 서로에게 익숙해질수록 벽을 점점 더 높게 쌓아가는 느낌입니다.
3)
살아가면서 정해진 만큼의 인연들만 찾아온다고 한 다. 누군가는 얕은 인연으로, 누군가는 깊은 인연으로 이미 정해져 딱 그만큼만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그 들은 예정대로, 곁에 오래도록 머물기도 하고, 역시나 또 정해진 것처럼 금방 스쳐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현명 하게도 자신의 깊은 인연을 제대로 알아보고 평생을 살 아가지만, 또 누군가는 어리석게도 몇 번의 인연들이 찾 아와도 제 짝인 줄도 모르고, 그저 스쳐 보내는 것이다.
4)
살면서 가끔씩 생각이 났고, 오늘은 생각이 난 김에 용기 내서 연락을 해봤어요. 잘 지내나 싶어서요, 날이 참 좋네요.
5)
과거에 앓았던 질병들이 서로를 못살게 군다. 우리 는 과거의 상처를 여전히 밧줄로 끌고 다니며 그것들이 상대방을 물어뜯게 방치한다. 알고 보면 현재의 우리가 아니라 과거의 상처들끼리 부딪쳐서 다투는 경우가 허 다한 것 같다.
6)
살다 보면 문득 추억에 사무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 순간들은 마치 계절처럼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드시 찾아오곤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바람 같은 것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바람을 그냥 그렇게 또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걸 알아간다. 지나간 바람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7)
세월은 흐르는데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여전하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살아갈 수 없고, 미래가 두려워 자꾸만 과거로 뒷걸음질 치다가 결 국은 그곳에 숨어버린다. 똑같은 실수는 언제나 반복되 며 깨달음은 언제나 몇 걸음씩 늦게 찾아온다. 사람들은 똑같은 반복에 지쳐가면서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미궁 속을 헤매다 길을 잃어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믿으며 다시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니, 빨려 들어간다.
8)
그토록 어리던 우리가 이토록 여린 우리가 되었어. 살아갈수록 점점 단단해질 거라 믿었는데 어떻게 된 게 살아갈수록 한없이 여러지는지 그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9)
서로의 보폭을 배려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갖기까지 우리는 몇 번의 인연을 떠났으며, 또 몇 번의 사랑을 떠내보냈을까.
10)
어리석게도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진 다음에야 우리는 관계의 소멸에 대해 알아채고야 만다. 이른 줄 알았더니 늦엇고, 잡힐 줄 알았더니 떠나버렸다.
11)
사람들은 종종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그리고는 스스로 오래도록 자기만의 방에 갇힌 채로 문을 두드린다. 상대방이 바깥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 다리면서. 그 문을 자기가 잠갔고, 열쇠도 자기 손에 쥐어있다 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채로 말이다.
12)
관계의 길목에서 저는 여전히 서성입니다.
진부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주리라 믿는다.